혜종이 고려 2대 임금이 된 것이 적절한가?
혜종
혜종은 왕건의 아들이자 고려 2대 임금이다.
그의 어머니는 장화왕후인데 목마른 왕건이 물을 청하자 나뭇잎을 띄운 바가지를 건낸 일화로 유명하다. 전라남도 나주 시청 앞에 있는 완사천이란 샘터가 이 이야기의 출처이다.
숨이 찬 상태에서 급히 물을 먹으면 위험할 수 있는데 나뭇잎이 있으면 나뭇잎을 불어 가면서 천천히 물을 마실 수 밖에 없음으로 급체의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왕후가 지혜로운 여인임을 알리기 위한 의도는 알겠는데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호족 집안의 딸이 빨래하러 가지 않았을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우연을 빙자한 의도적 만남이라 추측된다.
장화왕후의 아버지 나주 오씨는 금성(현재 나주)의 부자 상인이라고 한다. 왕건은 세력이 미약한 왕후의 처가 배경 때문에 임신을 꺼렸다고 한다.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혜종은 얼굴에 주름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왕건이 위의 이유 때문에 체외사정을 했는데 돗자리에 쏟았고 그것을 주워 담아 임신을 한 후 출산해서 주름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러나 이런 소문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왕건이 이 세력이 자신의 집권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어떻게 혜종이 2대 임금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장자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명백한 왕건의 실책으로 보인다. 불안전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정략결혼 정책까지 펼친 그가 보호막이 되어줄 외척세력도 없는 혜종에게 왕권을 넘긴 것이다.
물론 왕의 자질이 있었다면 모르지만 이복동생들의 도전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사례를 보면 더욱 잘못된 왕위 계승이였다고 보여진다.
그 결과 재위 2년만인 33살에 죽고 왕좌는 이복동생에게 돌아가고 만다. 세자가 있었음에도 이복동생이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혜종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잘못된 권력 승계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