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
뉴턴
우리는 위인들에 대해서 편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쉽게 탄탄대로를 걸어서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뉴턴의 아버지는 문맹이었고, 어머니는 그가 2살 때 재혼해서 떠나가 버렸다.
학창시절 성적은 좋지 않았고, 성격은 내성적이었다.
내성적인 아이들이 그렇듯 뉴턴도 혼자서 무엇인가 만들며 노는 것을 좋아했고 점점 복잡한 것을 만들며 놀았다.
보통의 경우 이런 아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심을 주지 않는다.
다행히 외삼촌이 뉴턴의 재능을 알아 주어서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천리마를 알아보는 눈을 지닌 백락 같은 외삼촌이 있었던 것은 뉴턴의 행운이다.
불행히도 흑사병이 돌아서 휴교를 해서 2년 간 낙향을 한다.
그런데 새옹지마라고 이 기간 동안에 과학과 철학에 대한 사색을 할 좋은 기회를 가졌으며 “뉴턴의 사과”도 이 시기의 일화라고 한다.
떨어지는 사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고민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수없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도 과수원 주인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으니까 갑자기 활달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뉴턴은 인생의 대부분을 기숙사에서 보낸 불행한 사람이라고 한다.
혼자 있었기에 관성의 법칙(운동 제1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운동 제2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운동 제3법칙), 만유인력의 법칙(운동 제4법칙) 등 위대한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인생에서도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걷는 길을 택했다.
이것은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 때문에 여자에 대한 혐오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된다.
영혼이 받은 상처는 반드시 다른 방향으로 그 아픔이 분출되어 나오기 마련이다.
뉴턴도 조폐공사 사장이 되었을 때 학계에서 떠났는데 그 이유가 성격이 괴팍해서 타인과 친화력이 떨어 졌다는 것이다. 또한 화폐 위조범을 잡아 처형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이런 공격적 성향은 어릴 적 입은 마음의 내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위인에 대한 평가는 그가 이룬 업적에 국한 되어야지 전인격적인 면에서 추앙을 하려다 보면 오히려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