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녹수
장녹수는 연산군의 후궁이다.
조선시대 왕은 절대권력자이다.
그런데 폭군은 더욱더 절대 권력자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법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는 남자이다. 그러나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있는 장녹수가 최상위 포식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노비로 출생해서 기생을 거쳐 후궁이 되고 참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는 양반이지만 어머니가 천민이라 노비로 태어난 것이다.
얼마나 억울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장록수가 삐뚤어진 인격체로 성장한 것은 과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어 보인다.
가난해서 시집도 여러 번 가고 아이도 낳은 후에 춤과 노래를 배워 기생의 길로 나섯다고 한다.
이 말은 외모가 되고 매력도 있다는 증거이다. 외모가 되니까 여러 남자가 달라 붙었을 것이고 충분한 끼가 보이니까 애까지 낳은 여자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쳤을 것임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식을 팽개치고 기생이 되었다는 것은 모성애을 능가하는 자기애를 추구했다고 추측된다.
egoism의 특징은 지나친 욕구충족 행위이다.
기생이 된 이상 신분상승과 재산축적이 그녀의 목표였을 것이고 이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잘나가서 왕에게 선택을 받게 된다. 일명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완성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욕구는 충족되었을까?
절제할 수 없는 욕구는 소금물과 같아서 마실 수록 갈증이 나는 법이다.
그녀는 가난과 천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미 충분한 부와 신분상승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고, 송사에 관여하고 남의 재산을 함부로 강탈하고 연산군의 권력을 등에 업고 상과 벌을 제멋대로 내렸던 것이다.
불나방이 죽는지도 모르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장녹수도 탐욕의 불 속으로 점점 다가가게 되고 결국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몰락하자 목이 잘려 죽는 참형에 쳐해진다. (1506년)
욕망의 불꽃은 생명을 연료로 사용해서 연소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천민 출신인 그녀가 어떻게 연산군에게 간택되고 폭군을 떡 주무르 듯이 가지고 놀았을까?
장녹수는 연산군의 눈에 띄기 전까지의 특징은 3가지가 있다.
첫째, 실력이 있었다.
춤과 노래 솜씨가 뛰어났다는 것인데 이는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개인의 부단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녀의 노력은 인정해야 할 듯 하다.
둘째, 개인기가 있었다.
연산군일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이 말에는 노래를 잘 한다, 소리가 맑다, 특이한 개인기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노래 잘하고 목소리 맑은 기생은 많았을 것임으로 이는 차별화 전략이 되지 못한다.
장녹수는 개인기를 연마해서 차별화를 시도했던 영리한 여인으로 짐작된다.
논리의 비약이 아님은 단체생활을 하는 기생의 생활상과 체면을 생각하는 조선시대 문화 속에서 복화술과 비슷한 것을 연습한다는 것이 보통 사람에게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째, 외모가 특별했다.
나이가 30이 넘었는데 얼굴은 16세 아이같았다고 한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동안의 외모를 갖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미모는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맞나보다.
서양속담에 미모는 재산과 신분과 성격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 선조들의 꼼꼼한 기록을 보면 "얼굴은 중인(中人) 정도르 넘지 못했다."라고 한다. 즉, 미인은 아니라는 소리이다. 조상들의 돌직구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미인들과 비교해서 떨어진다는 것이지 일반인과 비교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기회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맞는 듯 하다.
왕에게 미인들은 넘쳐 났을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동안이라는 것이다.
채홍사가 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은 이상 미인도 아닌데 왕에게 추천했겠는가!
이미 연산군의 취향이 미인에 있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이는 장록수에게는 천운인 셈이다.
간택된 후 장녹수가 연산군을 다루는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풍부한 경험과 철저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옛말에 도둑질 빼고는 다 경험해 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필요한 듯 하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풍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미지의 미래에 놓여 있는 수많은 문을 열기 위한 다양한 열쇠를 보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녹수가 연산군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3가지 경험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첫째, 여러 번의 결혼과 출산의 경험
시집을 여러 번 갔다는 것은 애정보다는 상황에 따라 남자를 만났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여러 남자를 만나면서 그녀는 남자들의 심리를 알게 되었을 것이고 이는 남자라는 생물학적 개체의 범주에서 볼 때 연산군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은 연약하고, 망설이고, 외롭고 불안해서 약간만 위로해 주고 인정해 주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충견같은 존재가 남자라는 것을 간파했을 것이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장녹수는 산모가 유아에게 젖을 물리는 것처럼 연산군에게 젖을 물렸다고 한다.
이는 모성애 결핍을 느끼는 연산군에게는 치명적인 무기가 되었을 것이고 장녹수에게 심적으로 백기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처녀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겠지만 출산을 경험한 장녹수에게 수유는 익숙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연산군은 정신적으로는 장록수의 어린 아들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연산군일기에도 "왕을 조롱하기를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들은 심리적으로는 모자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둘째, 노비 생활의 경험
연산군일기에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노비시절에 경험한 노비문화가 그대로 발현된 것이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의 욕설은 저질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유쾌하고 시원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장녹수의 욕설은 연산군에게는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사관들은 연산군을 왕이란 신분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기에 이런 광경이 굉장히 민망하고 자신이 모욕을 당하는 느낌으로 기록했지만 연산군의 생각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맛집의 욕쟁이 할머니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장녹수에게 욕을 먹으면서 새디스트적인 피학의 즐거움을 만끽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파멸을 향해 폭주하는 광기에 대한 소염제였을 것이다.
흔히 잘못한 자신에 대해 개선의 의지나 노력없이 "나 같은 놈은 죽어야 돼"라는 공허한 말과 같은 것이다. 얼핏보면 반성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순간적인 자위에 그치는 욕설 같은 것 말이다.
셋째, 기생 생활의 경험
기생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녀는 결코 연산군의 마음을 마지막까지 잡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화류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물주가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그 물주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쟁자 관리가 필수인 것이다.
물주는 혼자 독차지할 수 없기 때문에 아군과 적군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하는데 이런 습성은 기생 시절부터 몸에 베였을 것이다.
장녹수는 연산군의 총애를 받은 여인 중에 최전향과 수근비는 본인들만이 아니라 일가친척은 물론 이웃사람까지 초토화 시켰다. 그런데 어째서 전비와 백견은 저승 길동무가 될 때까지 함께하는 동지가 되었을까?
전자는 경쟁자이고 후자는 동업자이기 때문이다.
경쟁자는 내 파이를 빼앗아 가고 동업자는 파이를 키워서 나누어 먹는다는 사실이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천년 만년 갈 것 같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던 권세는 고작 4년(1502.11-1506.9)에 지나지 않았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잘못 사용하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